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잘 지내셨나요?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레터를 시작하기에 앞서, 술레터의 발행일이 정해져 기쁘게 알려드립니다. 

사실 저번에 참여해주신 설문조사 결과가 놀랍게도 균일했어요.

그리고 2주라는 텀이 긴 듯 짧아 고민하다 그냥 심플하게 정했습니다.

수0이자 술0인, 제가 보내드리는 레터니

날짜에 '0'이 들어가는 날에 보내드리려고요!

이제부터 술레터는 10일, 20일, 30일에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더 자주 구독자님을 만나볼 수 있어서 기쁘네요😆
(정하고 나서 수1이나 수2였다면 어땠을까 잠시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 지 벌써 16일차가 되었어요. 

2년 전쯤의 이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 걱정도 많았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며 쫄깃한 기분을 즐기기로 했어요!

함께 일하는 분들이 모두 밝고 건실한 분들이라서 다행인데,

업무도, 회사도 얼른 익숙해졌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구독자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지금은 #술토리와 #오늘의술, #술집추천을 전해 드리고 있는데요, 

발행일이 정해지면서 하나의 꼭지를 새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구독자님은 어떤 내용이 궁금하실지 너무너무 궁금해요.

아래 버튼을 눌러 간단한 설문에 답해주시면 

아주 많은 도움이 될 거랍니다😆

저와 친구는 기쁘게 마셨고, 기분이 한껏 들뜬 저와 친구는 양손 가득 포트 와인을 사서 동루이스 다리를 행복하게 걷던 기억이 나요. 손에 든 와인이 하나도 무겁지 않았던 그 순간.

어린 아이들은 다리에서 강으로 텀벙거리며 다이빙을 하느라 분주하고, 옆에 지나가는 이방인들의 알아 듣지 못하는 말소리. 낮술을 해서인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면 먼지가 민들레 솜털처럼 뻐끔뻐끔 뭉쳐 날아가는 듯이 보였던 시간들. 높은 도수때문에 달아오른 볼이 건조한 포르투갈의 햇볕에 코팅되는 것 같던 나른한 오후. 그 날을 생각하면 햇살 속에 느리게 움직였던 세상의 모습이 기억나요. 행복의 순간들이 비누방울처럼 날아다니는 것 같았던 기분도 함께. 

오키나와에서 간 오리온 맥주 공장은 딱 두 잔까지만 시음이 가능하다고 했어요. 아껴먹으려고 했으나 맥주가 느므 맛있자나요? 흐름을 끊을 수 없어 맥주를 원샷하고 새로운 잔을 받으러 가니, 직원이 나를 보고 더 마셔도 괜찮다고 천천히 원하는 만큼 먹고가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 잔 먹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딱 한 잔만 더 마셨어요. 그래도 따뜻한 오후에 세 잔을 연거푸 마시니 기부니가 조았크든요. '기분이 째진다'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데, 정말 그 날은 기분이 째졌어요.

이 기분을 오래오래 느끼고 싶어 괜히 미적거리며 공장 옆에 있는 천변가에 앉았어요. 앞에는 냇가가 흐르지, 내 뒤에는 아름드리 큰 나무가 있지 봄바람도 살랑살랑 불지 여기가 바로 몽유도원이구나 싶더라고요. 옆에는 중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타이밍 좋게도 기악반 합주 연습 중이었어요. 가끔 삑사리가 나기도 하고 느리기도 한 연주지만 그 자리에서 들고 있으니 너무 좋은 거 있죠! 야구부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은 흙먼지를 내면서 운동장을 뛰어다니지,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도 나지. 한 부분이 잘 안되는지, 삐끗거리며 같은 마디를 여러 번 반복하는 기악부의 연주와 합쳐지니 꼭 어렸을 때 보았던 일본 청춘 영화 속 장면 같았어요.  

기억에 남는 양조장 투어가 모두 햇살 좋은 오후라서일까요. 이제 양조장 하면 오후 세 시 정도의 봄바람이, 텀벙거리던 물소리가, 아마추어 기악부의 소리가 생각나곤 한답니다. 

갑자기 양조장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제가 빚은 술이 양조장에서 막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레터에 얼른 쓰고 싶어서 술이 오기만을 목빠지게 기다렸어요.

전에 지방의 막걸리 양조장들도 가보았을땐, 이미 준비되어 있는 키트를 안내에 따라 경험해보는 체험 프로그램에 가까웠어요. 그런데 강릉의 어떤 곳에서는 우리술을 꽤 직접적으로 빚어볼 수 있다지 뭐예요! 제주도를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바로 강릉 가는 KTX를 예매했어요. 한 번도 제대로 술을 빚어본 적이 없거든요.

기대를 잔뜩 안고 숙소 겸 양조장(?)인 곳에 도착해 차려주신 점심을 먹고, 소나무 숲에 산책도 다녀온 다음에 본격적으로 술 빚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누룩을 절구로 열심히 빻는 것! 빻을 때는 너무 곱게 갈면 또 맛이 좋지 않다고 해요. 이건 전에 다른 막걸리 양조장에서도 해봤었는데, 그때는 굉장히 큰 절구에 큰 방망이로 몇 번 치고 다음 순서로 빨리빨리 넘어갔던 게 전부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딱, 20분쯤까지만. 

처음에는 누룩을 약 300g만 갈아야 한다고 해서 별 일 아닌지 알았는데, 누룩 한 줌 정도를 잡으면 정말 얼마 되지 않더라고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10~20g 사이였던 것 같아요. 아주 여러번 누룩을 빻아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가장 먼저 손의 근육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요. (으아아아 이술영 손 갑자기 움직인다! 이술영 갑자기 하지도 않던 손 운동한다! 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어요) 특히 손을 주먹으로 말아 쥐었을 때 안쪽에 있는 근육들이 특히 아팠어요. 절구가 또 도자기 재질이다 보니 혹시 깨트릴까 두려워 잡고 있는 반대편 손에도 괜한 힘이 들어갔어요. 잠깐 정신을 놓으면 누룩들이 절구 밖으로 흩뿌려지기 일쑤였고, 절구를 일정한 힘으로 계속 두드려야 하니 팔과 손목도 아프기 시작했죠. 호스트님은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해야 이 작업이 얼른 끝난다고는 했지만, 절구에 눈을 뗄 수 없었어요. 한 번 눈을 떼었다가 왼손 검지 손톱을 방망이로 으깰 뻔 했기 때문에.......ㅎㅎㅎ

그래도 어찌저찌 누룩 300g을 채웠고, 펴놓은 고두밥도 거의 식어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땐 몰랐어요. 지금까지의 힘듬은 그냥 커피고, 이제 곧 T.O.P가 다가온다는 걸... 

* 고두밥 : 아주 되게 밥을 지어 고들고들한 된밥. 식혜나 술을 만들 때 발효 시간을 줄이기 위해 주로 사용한다. (출처 : 두산백과) 

밥과 누룩을 섞으면서 발효가 될 수 있도록 잘 버무려주는 단계라고 해서 섞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섞기가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쌀 씻는 거랑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들밥은 꽤 무거웠어요. 미끌거리지도 않고 아주 쫜쫜했고요. 온전히 손과 팔과 어깨와 코어 힘으로 이 친구들을 잘 비벼줘야 했어요. 크게 호선을 그리며 구석에 묻어 있는 누룩과 밥을 긁어내고, 손에 힘을 주며 아래에서 위로 밥을 뜨듯이 한 바퀴 섞고, 마지막으로 어깨와 (없는) 삼두를 쥐어짜며 바닥으로 눌러줘야 했어요. 자꾸 마찰이 생겨야 쌀에서 단맛이 나고 그때야 병에 담아 발효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해서요!

그렇게 10분.. 20분이 지나자 팔이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는데, 술을 무조건 맛있게 만들고 싶은 욕심에 몸과 머리가 따로 놀기 시작했어요. 힘을 줘야 할 때 주지 않고, 팔목이 꺾였는데 힘을 줘버리는, 머리와 팔의 분리 상태라고 할까요? 별안간 쌀을 퍼서 제 얼굴로 집어 던져 버리는 그런 상태?

그렇게 약 40-50분을 팔을 더 혹사 시키고 나서야 병에 넣을 수 있었답니다. 술 빚는 과정도 명상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았어요. 유튜브 수면영상으로 알려진, 우주의 끝을 찾아서 영상처럼 비비는 내내 우주 속을 유영하는 느낌이었어요.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딘가, 이건 언제야 끝나나. 

그리고 너무 힘을 준 까닭일까요. 하루 동안은 진동 온 것처럼 팔과 손을 떨어가며, 이틀 동안은 코로나 근육통을 능가하는 근육통을 얻었답니다. 전에는 많은 막걸리 양조장들이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2000ml 정도 되는 막걸리를 만들기에도 이렇게 힘든데 대량 생산을 하려면 어쩔 수 없죠. 늘 막걸리를 만들어주심에 감사하며 마시기로 결심했어요.  

제목 : 흔들리는 초점, 2022.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나고 드디어 뽀얀 단양주가 집에 왔습니다. 맛은 말해 뭐해요. 지금까지 마셔본 어떤 막걸리와 같지 않아요. 과실향이 산뜻하게 올라오고 입에 닿는 첫 느낌도 부드러워요. 한 모금 마시면 나주 배를 아삭 씹어먹었을 때 배향이 팡 터지는 것처럼 신선한 배 향기가 느껴지고, 은은한 탄산감이 목넘김을 깔끔하게 만들어줘요. 안주가 필요없을 정도로 맛과 향을 톡톡히 다 해주는 술이라 모든 근육통을 싹 잊었답니다. 심지어 제 동생은 막걸리와 동동주가 몸에 받지 않아 한 모금도 먹지 않는데, 이 술은 무려 절반이나 마시고는 맛있다는 후기를 전해줬을 정도랍니다. 그리고 저는 꼭 술을 좋아하는 누군가와 함께 다시 가기로 마음 먹었어요. 이렇게 맛있는 거 나만 먹을 수 없어. 

아참! 단양주는 저도 생소해서 찾아본 단어인데요. 우리 술은 술을 빚는 횟수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른 경우도 있다고 해요. 한 번 빚으면 단양주, 두 번, 세 번이면 이양주, 삼양주라고도 부르는데 흔히 생각했을 때 '동동주'가 단양주에 속한다고 해요. 단양주는 도수가 낮아서 탄산이 생기니, 꼭 뚜껑을 천천히 열라는 당부 안내 편지가 있었는데요. 저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술을 흔들어서 열어버렸답니다. 혹시 초등학교 로켓 발사 대회 기억나시나요? 술에서 그 로켓 발사할 때 소리가 나더라고요. 집에는 별안간 샴페인 파티가 펼쳐지고, 막 세탁기에서 나온 빨래 더미를 그대로 세탁기에 집어넣어야 했지만 그래도 행복해요. 

모든 걸 다 잊을 정도로 술이 진짜 너무 맛있으니까요. 단양주 최고! 양조장 최고!

오늘의 술레터는 어떠셨나요?

오리 전골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적고 나니

전골이 너무 먹고 싶은 새벽이네요. 쩝.

만약 나누고 싶은 술집이 있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 적어주세요. 

좋은 건 나누면 배가 되니까 우리 함께 술집 빅데이터를 쌓아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