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어제 중학교 친구들과 짧은 전주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왔어요. 

전주에 내려가는 길에 오늘 레터의 틀을 잡고, 올라오는 길에 작성을 완료했는데 

그만 모든 내용이 날아가버렸지 뭐예요?

KTX 와이파이가 내내 불안하긴 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심지어 밤에 다시 작성한 글도 실수로 한 번 더 날아가서

세 번째로 여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야근을 마친 지금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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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 폼에 남겨주신 이야기를 종종 읽고 있어요.

특히 '마셔주었으면 하는 술' 항목을 유심히 보다 스크롤을 멈추게 하는 단어를 발견했어요. 

압생트는 강렬한 초록색이 매력적인 프랑스의 술입니다. 고흐 뿐 아니라 보들레르, 헤밍웨이 등 많은 작가들이 좋아하는 술로도 알려져있어요. 압생트가 유명해진 건 비단, 작가들이 사랑하는 술때문만은 아닙니다. 압생트는 스토리, 썰이 많은 술이에요. 게다가 흥망성쇠도 겪은 술이죠. 그런데 사실 압생트는 술로 만들어진 음료가 아니랍니다.

압생트는 본래 약으로 쓰려고 만든 음료였어요. 약용으로 쓰는 만큼 쓴쑥과 회향 등 몸에 좋은 것들을 넣어 만들었죠. 그래서 말라리아나 이질 같은 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었다고 해요. 당시 알제리 침략을 위해 아프리카에 주둔하던 프랑스 군에게는 꼭 필요한 예방약이었죠. 군인들은 풍토병을 예방하기 위해 알제리에서 이 약을 자주 물이나 와인에 타서 자주 마셨는데, 전쟁 후 프랑스에 돌아오고 나서도 이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해요. 

발빠른 파리의 술집들은 군인들이 '압생트'라는 약을 찾고있다는 소식에 압생트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프랑스 군인이 전쟁에도 먹은 건강한 술'로 바이럴이 되어 버려 압생트는 금세 유명한 술로 자리매김 했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니 너도나도 압생트 제조 산업에 뛰어들면서 '고급 술'로 정평났던 압생트는 서민들도 즐길 수 있게 되며 대중화가 되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저녁 먹기 전 5~6시를 압생트를 마시는 녹색 시간(L'heure verte)이라고 부르는 명칭까지 생겨났다고 해요. 그 시기에 와인을 만드는 포도나무에 치명적인, '필록세라'라는 병충해가 프랑스 전역에 퍼져나가면서 와인 제조가 감소하자 압생트는 그야말로 대세가 됩니다. 와인을 넘어 프랑스의 '국민 술'이 된 것이죠. 

그런데 국민 술이 되기에는 압생트는 도수가 살짝 센 술이었어요. 높은 건 75도 정도, 낮아도 55도 정도였죠. 그리고 압생트는 밥을 먹기 전 마시는 '식전주'로 인기가 높았어요. 즉, 고도수의 압생트를 마시고 + 밥을 먹으면서도 와인을 마시는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죠. 게다가 당시는 '아름다운 시대(벨 에포크)'로 수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한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오는 시간적 배경이 바로 이 때입니다. 좋은 시대에 부어라 마셔라하는 술문화는 브레이크 없이 퍼져나갔고, 결국 사단이 나게 됩니다. 압생트를 먹은 남편이 가족들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죠.

이후 종교계가 주도해 압생트를 악마로 몰아가기 시작합니다. 여기에는 프랑스 주류 산업에서 소외된 와인업계도 가세해 센 입김을 불어넣었다고 해요. '중국의 아편만큼 해롭다', '독이 함유되어 있다', '압생트는=죽음' 같은 썰들이 마구 생겨나며 압생트 타도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국민 술에서 '초록 악마'라는 불명예를 얻은 채로 프랑스에서 판매 금지를 당하면서 압생트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어요.

다행히 21세기에 들어 억울한 누명을 벗으면서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술'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일들을 겪은 것 같지 않나요? 

갑자기 왜 압생트 이야기냐고요? 그건 저의 최악의 주사 중 하나가 바로 압생트를 먹은 날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사를 만들어 내는 사람보다는 사람들의 주사를 목격하고, 놀라고, 어르고 달래서 집에 보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술자리를 할 때 신경을 기울이지 않으면 취하곤 합니다. 특히 1. 빈속에 2. 물 마시지 않고 3. 빨리 마실 때 4.잠을 2-3시간만 잤을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가끔가다 두 세개가 겹치는 날들이 있어요. 그럴때면 변기통 앞에서 주님의 장엄한 심판을 받습니다. 아주 간혹 네 개가 겹쳐버리는 끔찍한 날이 있습니다. 제 인생에서는 딱 두 번 왔네요. 오늘은 그 끔찍한 주사들에 대해 말해보려고 해요. *저와 친구들이 조각조각 기억을 오려 붙인거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날은 기분이 좋은 날이었어요. 그런 날 있잖아요. 괜히 오늘따라 들뜨고 그런 날. 그럴만도 한 게 유럽 여행을 간 친구들이 압생트를 사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단골 술집에서 안주를 시키고 기다리는 데 그날따라 안주가 늦게 나오는 거예요. 기다리다 지친 우리는 압생트를 먼저 까기로 결심했어요. 친구가 가져온 압생트는 색깔도 종류도 여러 가지 였어요. 기대를 잔뜩 하고 한 입씩 먹었는데 먹는 순간 알았어요.

이것은 ㅅ ㅏ ㄹ 5 이라는 걸.. 

약간 미끌미끌하고 상쾌하고 꿈꿈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 평소 고수나 민트도 없어서 먹는 제게 이토록 딱인 술이 있다니? 한 친구도 눈을 번쩍 뜨며 너무 맛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꼭 다 그런 건 아니었어요. 네 명 중 두 명은 입에 댔다가 질겁하면서 잔을 내려놓았거든요. 아니, 이렇게 맛있는 걸 안먹는다고? 오히려 좋아. 그럼 나머지 술은 우리 둘이 다 먹어치우도록 하지. 그렇게 둘이서 압생트를 콸콸콸콸 목구멍에 꽂았어요. 차라리 그때 압생트만 먹고 집에 갔으면 좋았겠지만 거기에 소주도 섞고, 사케도 섞어버렸답니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 클릭하면 재생!

멀쩡한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면 2시간씩 지나있는 마법, 다들 아시나요? 전에는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자꾸 세상이 돈다길래 거짓말 하는 줄 알았어요. 언제든 제가 술을 마실 땐 한 번도 세상이 돈 적이 없거든요. 하지만 그 날은 정말 돌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도는 게 아니라 좌뇌와 우뇌가 서로 반대편으로 도는 느낌이었어요. 에버랜드의 더블 락스핀이 제 머리 양쪽에서 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아! 땅이 일어섰다 꺼졌다 한다는 느낌도 처음 받아봤어요. 정말 시공간이 비틀어지는 <인셉션> 같은 느낌. 그리고 그 다음은 잘 생각이 나지 않아요ㅎㅎ 하나는 기억나요.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눈을 깜빡깜빡 뜰 때마다 변하던 내 앞의 사람, 장소.... 최악의 블랙아웃, 최악의 주사... 그렇게 거의 반죽음 상태로 집에 가서 다음날을 변기와 함께 보냈답니다. (이하생략) 이후에는 압생트의 압만 들어도 조건 반사로 토가 나오는 끔찍한 몇 년을 겪었어요. 그 친구도 함께요. 

그래서 아주 슬프지만 '압생트'를 마셔달라는 부탁을 당장은 들어드릴 수 없다는 슬픈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건 여름쯤에! 한 번 다시 도전해볼게요! 

 2015년 출시된 순하리 유자맛은 출시되자마자 품귀 현상이 일어날 만큼 인기가 많았어요. 편의점 여러곳을 돌아다녀야 겨우 한 병 구할까 말까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학교 축제를 위해 과 주점에서 순하리 유자맛을 아주 많이 쟁여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당연히 빠질 수 없었죠. 순하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기대하던 그 날, 모이기로 한 여섯 명 중 저를 포함해 다섯 명이 늦었고 진도주로 순하리 한 컵씩을 원샷하고 시작했어요. 이름처럼 정말 순해서 '이 정도야 뭐' 하고 대충 넘겼죠. 그런데 그 날 점심도 먹지 않은 빈속에,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컨디션도 별로인데다, 잠도 얼마 못자고, 물을 떠먹기에는 열악한 축제 주점이었어요. 이렇게 많은 시그널이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순하리 유자맛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상념 하나에 사로잡혀 광기로 눈이 빛날 뿐. 하필이면 축제에 소주 컵이 다 떨어져 물마시는 종이컵만 있었고, 그 종이컵으로 물마시듯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고, 맛이 너무 순하다며 소주를 꽂아 둘을 섞어버리는 기행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어후 말도 못해요.

제가 분명 7시 넘어서 주점에 도착했는데 전 거의 1시간 반만에 맛이 가버렸고, 친구들은 남자친구에게 S.O.S.를 쳤습니다. 남자친구가 오니 또 좋았나봐요. 쓰려고 하니 너무 흑역사라 끔찍하지만.. 우선 주점이 모여있는 운동장을 나가는 것도 벅찼대요. 모르는 사람들한테 인사를 하며 '안녕하세요~ 여긴 제 남자친구입니다^^' 라며 모든 사람 알은체를 하는 걸 막느라요.

잘 걷다가 멈추고, 또 잘 걷다가 멈추고를 반복해서 매 걸음마다 저를 달래야만 했고, 25분이면 도착하는 길을 가젤마냥 뛰면서 돌아다녀서 집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3시간이 넘게 걸렸대요. 아, 집에 가는 길에 피아노 건반이 그려진 벽화가 하나 있는데 거기 앞에도 철푸덕 앉아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대요. 소리는 어떻게 냈냐고요? 솔미도솔솔솔하며 계이름으로, 우렁차게요. 이날도 술자리 후반부와 돌아오는 길은 블랙 아웃이 되어버렸답니다. (평소엔 블랙아웃이 없습니다ㅠ 그리고 이렇게 개차반 사람 아닙니다ㅠ) 

이야기를 하다보니 끔찍하네요. 혹시 구독자님은 기억하고 있는 최악의 주사가 있으신가요? 만약 있으시다면 함께 나눠주세요. 우리 함께 공감하며, 더욱 건강하게 술을 먹기로 약속해요. 그리고 아래에 제가 취해서 계이름으로 완곡한 곡을 유튜브에서 가져왔어요. 오늘 들은 끔찍한 이야기들 좋은 음악으로 얼른 씻어버리시길 바라요. 

오늘의 술레터는 어떠셨나요?

듣고 싶지 않은 거대한 TMI를 뿌린 건 아닐까 쓰고나서 고민이 되는 날이네요. 

이제는 절대 저렇게 먹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조심히 몸사리면서 길~게 먹으려 하는 요즘입니다. 

구독자님도 언제나 건강한 술 라이프를 즐기시길 바라요 :-)

그리고 간단한 설문조사를 하고 있어요. 

술레터를 운영하면서 꼭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니 괜찮다면 꼭 참여해주세요! 

참여해주시면 한 분을 선정해 '상쾌환(10포)'을 선물로 보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