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뱅이님!

술0입니다! 그동안 좋은 날들 보내셨나요?

저번 레터에는 한창 꽃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일주일 새 꽃이 모두 져버렸네요.

대신 나무에, 풀에 초록이 가득 차오르고 있어서

매일 생경한 요즘입니다🌱

주말에는 고성과 양평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나름 비수기고, 애매한 시간이라고 생각해

백촌막국수를 3시에 갔는데

대기를 1시간은 해야 하더라고요.

4시에 밥을 먹는 슬픈 일이 벌어졌지만

동치미막국수 맛과 수육, 명태식해는 

기다림을 잊을 수 있게 완벽했어요.

오늘은 술레터 처음으로 🍷와인이 주제입니다. 

  당연히, 모든 와인을 좋아해요. 바디감이 있어도 좋고, 가벼워도 좋고, 향이 진해도 연해도 좋고, 달아도 써도 좋고, 레드, 화이트, 그린, 샴페인, 로제, 포트 그냥 다 좋아요. 유럽여행에서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좋았던 건 매일매일 와인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었으니까요. 

 와인을 볼 때 유의깊게 보는 건 전체적인 조화예요. 맛 자체가 엄청나게 밍밍한 와인이라도 향과 바디감이 좋다면 맛있다고 기억하는 편이니까요. 맛, 향, 목넘김, 혀에 남는 맛, 바디감이 모두 다 완벽하면 좋겠지만, 저는 그렇게 돈을 잘 벌고 있지 않으니 그중 절반 정도가 괜찮다면 좋아하는 편입니다. 

가격도 중요해요. 와인바에 가거나 친구들과 함께 먹는 와인에는 돈을 조금 쓰지만 홈술용 와인은 적당히 괜찮은 걸 찾습니다. 돈을 좀 더 쓴다면 4만원 대까지 보는 편이지만 2~3만원대가 좋긴 해요. 

쓰고보니 조금 깐깐하네요(?) 이렇게 가격도 적당하고, 페어링도, 맛과 향 바디감도 제게는 괜찮았던 와인들을 소개해봅니다. 와인은 특히 취향을 많이 타는 부분이라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볼게요! 

🍷Moulin d'Argent(물랑 다르쟝)

🍇 샤도네이

💸 2만원대 중반

여름이 되면 이 와인을 찾아서 와인샵을 헤매고 다닙니다. 2만원 대 화이트 와인 중 이게 제일 산뜻하고 쌍콤하고 바디감도 적당하고 향기롭고 맛있었어요. 마실 때마다 실망하지 않는 맛. 향도 꽤 오래 갑니다. 한 병을 다 비울 때까지 어느 정도 살아있어요. 

이 와인의 단점이라면 와인샵 중에 물랑 다르쟝을 취급하는 와인샵이 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있을 때 쟁여 오는 게 좋습니다. 아! 이 와인을 함께 먹은 모두가 맛있다고 말했던 와인이기도 해요!

🍷까사 로호 마초맨

🍇 모나스트렐(스페인 토착품종)

💸 3만원대 초반 ~ 4만원 대

#날이좋아도날이흐려도날이적당해도좋은와인

와이너리 오너, 호세 루이즈의 모습이 라벨에 담겨 있는 와인. 보통 레드와인보다 진한 검붉은 색이 특징이고 적당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는 와인입니다. 끝에 남는 맛이 지나치게 씁쓸하지 않고, 적당한 당도를 가지고 있어요.

처음에 마셨을 땐, 조금 강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시면 마실 수록 무게중심이 잘 잡혀있다는 느낌이었어요. 레드 와인에 어울릴 만한 음식들이랑 궁합도 잘맞고 향이 강한 오징어 숏다리와 먹었는데도 괜찮았습니다. 맛이 어디 하나 빠지지 않게 적당해서 질리지 않고 한 병을 비울 수 있는 와인이라고 생각해요! 

행사가로 나오면 3만원 대 초중반에 나오는 와인이고 저도 그럴 때만 사는 듯합니다! 그리고 와인 뚜껑이 밀랍으로 되어있으니 손 조심! 

 두 달 전부터 토요일 아침 9시에 피겨 수업을 듣고 있어요. 금요일 술 약속이 두려울 수밖에 없는 시간이죠. 마음만은 금요일을 비우고 싶은데, 놀기에는 금요일만한 요일이 또 없잖아요! 그래서 자꾸 약속을 하나 둘 잡고 있어요.

저번에도 그랬어요. 와인을 마신다고 했고, 인당 한 병씩만 마시자고 해서 냉큼 약속을 잡았는데 와인 두 병에 자리가 끝나지 않았어요. 사실 이건 예견된 일이었어요. 애써 흐린 눈을 하며 보지 않았을 뿐이지. 같이 간 친구는 찐짜 친하고 찐짜 술 잘먹는 술쟁이거든요.

약속을 지킬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와인 두 병을 마시고는 진로를 시켜서 소주를 섞기 시작했어요. 마실 때는 몰랐죠. 행복하니까. 문제는 바로 그 다음 날 피겨 수업이었어요.

우선 새벽에 깨서 타는 목마름으로 배민을 켜서 저의 해장 푸드, 토마토 주스 1리터를 시켰어요. 토마토 주스를 원샷하니 좀 괜찮더라고요? 다행이다 하고 이를 닦는데 어이쿠야. 그만 칫솔로 목구멍을 찔러 버린 거 있죠. 그때였어요. 어제 먹은 술과 안주의 아우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건. 꿀렁 ~ 꿀렁 ~ 위 아래로 몸이 크게 흔들리고 머리도 살짝 아파오기 시작하고. 시계를 보니 8:40분이었어요. 이미 늦어서 택시를 타야하는 시간.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려고 타다를 불렀지만 13분 후에 도착한다는 알림을 보고 취소했어요. 이젠 카카오택시에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아가리 천주교 신자는 하느님을 찾았어요(이럴 때만) 제발 담배 냄새가 찌든 택시가 아니길. 제발. 택시가 도착했어요.

아아. 담배 냄새 + 가죽 냄새 택시 당첨!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나는 토를 하고 싶지 않다'를 오백번쯤 외쳤을 무렵 도착했어요. 자칫 이상하면 화장실로 당장 달려가려고 했지만 막상 빙상장에 내려가니 또 괜찮은 거 있죠? 앗!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네요? 아, 다시 움직여요. 꿀렁 ~ 꿀렁 ~

하지만 지각자는 내 위의 안위를 신경쓸 여력이 없죠. 선생님께 늦어서 굉장히 죄송합니다 눈짓을 한 뒤 수업에 따라가기 바빴어요. 빙판 위에 그려진 여러 선들을 스케이트 날로 열심히 따라가야 하거든요. 하다보니 순조로웠어요. 역시 해장은 땀으로 해야해! 하며 자신만만했죠. 턴 연습 하기 전까지는...

턴을 한 바퀴 휙 돌자마자 신호가 왔어요. 당장 화장실로 뛰어가야만 하는 서늘한 예감.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하고,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기분. 

하지만 화장실까지 가다가 분명 토해버릴 게 뻔했어요. 가장 최악은 여기, 사람들이 은반이라고 부르는 이 빙판에 토하는 것. 주마등이 스치는 것처럼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토를 하면 왁-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최대한 오옥- 하게 토를 해야 하는지, 처리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혹여라도 얼음에 스며들면 그땐 어떤 상황이 기다릴지. 수업이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해 보니 아직 2번이나 더 남았고.. 환불 되나? 환불이 아니라 배상해야 하는 금액이 더 큰가? 등등..

어쨌든 일어나서는 되지 않을 일이었어요. 그래서 혼신의 힘으로 참고 온몸으로 어지럽다는 느낌을 표현했어요. 두 손은 머리 위에 올리고 찡그린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하지만 선생님의 눈초리를 피해가긴 어려웠어요. '도세요!' 하면 돌아야만 했거든요. 그렇게 1 스핀 1 우엑 1 절레절레를 하며 수업을 간신히 마무리 했다는 더럽고도 힘겨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제 정말 다시는 와인과 소주를 섞어 먹지 않을 거예요. 

  p.s. 오늘 술레터의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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