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티에서 교수님이 가져온 발렌타인 같은 위스키 말고 자의로 먹어본 위스키는 발베니가 처음이었어요.
친구들과 함께 간 바의 메뉴판에는 맥켈란, 아드벡 등 다양한 위스키 이름이 써있었지만 까만건 글씨요 흰 건 종이었을, 위스키를 하나도 모르던 시절이었죠. 아무리 몰라도 숙성년의 수가 늘어나면 더 비싸고 좋은 것이라는 것쯤만 알았어요. 그래서 가장 앞에 있는 년수를 확인하곤 했는데, 평소 숫자 2를 좋아해서 12년산을 먹고 싶었고, 발베니의 영문 스펠링 조합이 힙하다는 이유로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산 한 샷을 시켜 처음으로 먹었어요. 그런데 어찌나 내가 먹어왔던 위스키와는 다른 맛이었는지. 부드러우면서도 좋은 향기가 입과 코에 가득한 느낌. 먹어도 먹어도 안질리고, 발향은 지속되는 마법 같은 술. 잔에 따랐을 떄도 얼마나 색이 영롱한지. 황금빛이 출렁거릴 떄마다 내 마음도 반짝 거렸어요.
병아리가 처음 본 동물을 엄마라고 여기듯 그떄부터 저의 발베니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바를 가면 항상 발베니를 시키고, 위스키 맛이 익숙해졌을 떄는 18년도, 21년도도 시켜보는 사치를 부렸습니다. 위스키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는 친구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영업하며 많은 친구들을 발베니 러버로 이끌기도 했어요. 이렇게 먹다가 거덜나겠다 싶어 바틀도 사기 시작했어요.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제주도에 다녀오면서 한 병씩, 또 한 병씩. 그렇게 집에서 먹어치운 발베니만 10병은 넘을 거예요.
이렇게 열심히 먹고 나니 이제 다른 위스키가 궁금해지더라고요. 맥켈란은 어떤지, 아란은, 아드벡은, 어떤 맛인지 궁금해졌어요. 그렇게 바에서 한 잔씩 마셔가며 제 취향을 알아가고 있어요. 내가 버번 위스키를 좋아하는 지 아닌지, 스코틀랜드 산을 좋아하는 지, 싱글몰트를 좋아하는지 같은 섬세한 취향의 영역을요. 고급 취향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온전한 내 영역이 아닐거라고 생각했던 위스키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지평을 열어줬던 건 분명 발베니 덕분이에요.
만약, 내가 먹어본 위스키의 맛이 별로 취향이 아니었다면 발베니 한 잔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제게 발베니가 마중물이 되어준 것처럼, 구독자 뱅이에게도 첫 단추가 되어줄 수 있는 입문용 술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술을 만나면 뱅이의 취향도 나무 가지가 뻗어나가듯 많이 생길 거예요.
세상에 술은 참 많고, 발견되지 않은 취향도 정말 많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