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제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술썰을 풀어봅니다.
우선, 대학교 때였고 시험기간이었습니다. 시험 공부는 무릇 여럿이 함께해야 재밌잖아요? 그래서 동기 네 명이 모여 동기 집에서 밤새 공부를 하자고 모였어요. 바로 공부를 하긴 정없으니까 와인 한 병만 딱 나눠먹고 공부를 할 작정이었죠. 무리 중 세 명은 과에서도 술을 잘 먹기로 소문이 난 친구들이라서 와인 한 병은 저희에게 정말 음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인 오프너가 동기 집에 없는 거예요.
이미 지금 위는 와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데!!!!! 당장 마시고 싶은데!!!! 안달난 우리는 이성을 잃어 버렸어요. 편의점에 달려가서 오프너를 사오는 선택 대신, 어떻게든 코르크를 열겠다는 무모한 다짐을 해버립니다. 젓가락을 쑤셔도 보고, 가위를 이용하기도 하고, 숟가락, 칼 등등 집에서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시도하다 보니 슬슬 오기가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와인을 열려고 한 지 30분이 훨씬 지나있었거든요.
당시 그 집에는 동기가 다른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친구도 친구를 데려와서 다른 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거실에서 시끄럽게 있으니 그 친구들이 나와서 무슨일이냐고 물어봤어요. 상황을 설명했는데 그 친구들도 이미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습니다. 그 와인을 이리 줘보라며 자기들이 따보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도합 여섯 명이 그 와인을 따겠다고 별 짓을 다 하다 마침내, 와인이 뻥 소리를 내면서 열렸습니다.
그 때의 심정은 마치 2002년 월드컵의 4강 진출이 확정된 순간만큼의 환희였습니다. 세상이 아름다웠어요. 같이 애써준 그 친구들이 오바 보태서 전우같이 느껴졌어요. 이렇게 고마운데 와인도 응당히 나눠먹어야죠. 그래서 한 병을 무려 여섯 명이서 나눠 마셨습니다. 당연히 술은 성에 차지 않았고요.
그때 같이 사는 한 친구가 말했어요. 자기가 제주도 출신인데, 한라산 2리터짜리 노지(냉장고 밖에 꺼내놓은 미지근한 술)가 있다고. 그 때 알아차렸어야 했어요. 이게 바로 비극의 시작이자 사망 플래그라는 걸.
한라산 2리터로 시작한 술자리는, 친구가 숨겨놓은 40도 짜리 고소리술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냉장고 안에 있던 소주로, 또 남아있던 한라산 2리터로(노지), 이건 정말 꺼내지 않으려고 정말 숨겨놨다는 또 다른 고소리 술로.. 아까도 말씀드렸듯, 이 모임에 세 명은 술고래였어요. 그 당시 기준으로 각 세 병씩은 너끈히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이었죠.
술이 부족하자 우리는 편의점을 다녀오기 시작했어요. 와인 오프너는 사러 가지 않았지만, 술을 사러요. 게다가 한 번 갈 때마다 비닐 봉지에 팔이 짓이겨지도록 소주, 맥주 섞어서 열 병씩을 사왔습니다. 하지만 부족하고, 또 부족했어요. 그래서 편의점에 세 번을 넘게 다녀왔어요.
그 말은,
한라산 2리터 페트병 2병 + 고소리술 2병 + 와인 1병 + 집에 남아있던 술들(막걸리, 소주 몇 병)에 30병 이상을 더 마셨다는 소리입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제가 자러 가고 나서도 술을 더 사서 마셨다고 해요)
어느새 시간을 보니 새벽 네 시가 넘어있었고, 다행히 술에 취할 것 같으면 자버리는 저는 친구 방에 들어가서 숙면을 취했습니다. 그러다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눈을 떴는데 밖이 지나치게 고요한 거예요. 방에도 저 혼자밖에 없었습니다. 아침에 유난히 눈이 벌떡 떠지는 그 느낌을 아시나요? 마치 그런 느낌이었어요.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다는 느낌. 우선 한 친구 시험이 오전 9시라, 시계를 보니 7시 30분 쯤이었어요. 친구를 깨워야 겠다 하고 문을 열었는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끔찍했습니다.
온 집이 토로 가득했어요. 초록토.. 노란토.. 보라토.. 싱크대에도 토.. 우리가 먹던 반상에도 토.. 신발장 옆에도 토.. 베란다에도 토.. 문앞에도 토.. 화장실 앞에도 토.. 벽에도 토... 저는 살면서 그렇게 많은 토가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걸 처음 봤어요. 사실 지금까지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롤러코스터 타이쿤 게임에서 일부러 경사진 롤러코스터를 만들어서 길바닥에 토를 하게끔 의도 했을 때와 같다고 할까요?
속이 괜찮았던 저도 온곳에서 밀려드는 토 냄새에, 모습에 위가 비릿하기 시작했어요. 차마 제가 또다른 토 생산자가 될 수는 없어 화장실로 토들을 뛰어넘으며 달려갔죠. 하지만 화장실도 최악이었어요. 변기에 조준하지 못한 토들이 변기 옆에 흐르고 있었으니까요. 욕조에도, 세면대에도 아주 난리였어요.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친구를 깨워야 하니까 친구에게 갔는데 어이고 저런. 과잠바가 토로 물들어 있었어요. 그리고 와인 코르크를 따준 친구들은 토와 함께 뒹굴며 자고 있었죠. 지옥도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친구들을 깨우는 것. 하지만 시험이 있는 친구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집주인 친구는 잔뜩 취한 목소리로 괜찮다며 집에 조심히 가라고만 했죠. 제가 봤을 땐 집을 버리거나.. 세탁기에 빨아야 하는 정도처럼 보이는데도 말이죠. 그렇게 일어나지 않는 친구들을 놔두고.. 화장실과 싱크대에 물을 열심히 끼얹어주고, 소주병과 맥주 페트병을 몇 개 들고나와 집에 터덜터덜 갔던 기억이 나요.
아, 저도 마을버스를 탔다가 중간에 내려서는 하루 내내 누워있었답니다! |